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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NIE 학습지 만들기 퀴즈

Total questions: 23

Worksheet time: 1hrs 9mins

Name
Class
Date
1.

‘우당 이회영’을 통해 학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습니까? 키워드를 적어보세요.

4 lines
2.

주제별 학습지의 흐름에 맞춰 시작글과 중간글 등 각각의 점을 알맞게 서술할 수 있다.

4 lines
3.

‘우당 이회영’ 선생 내용을 바탕으로 역사NIE 학습지의 틀을 잡을 수 있다.

4 lines
4.

수능 탈락의 위험요인을 제거

4 lines
5.

‘우당 이회영’의 기승전결 구조를 짜 봅시다.

4 lines
6.

‘우당 이회영’ 주제로 학습지를 만들겠습니다. 다음은 시작글의 재료이며, 마지막은 지문1입니다. 시작글 재료를 바탕으로, 이어질 지문1을 감안하며

4 lines
7.

‘우당 이회영’의 기승전결 구조를 짜 봅시다.

4 lines
8.

왜 아나키스트를 선택했을까?

4 lines
9.

이들을 기억하여 긍정적 영향

4 lines
10.

이념, 남녀노소

4 lines
11.

왜 아나키스트를 선택했을까?

4 lines
12.

이들을 기억하여 긍정적 영향

4 lines
13.

이념, 남녀노소 상관없이 포용한 이회영. 그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가 요약합시다.

4 lines
14.

여러분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양반집 자제입니다. 그런데 1910년 일본이 이 나라의 주권을 빼앗았습니다. 또 자신들에게 협조하면 돈과 작위를 주겠다고 회유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4 lines
15.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에 사회 지도층, 즉 양반들이 나라를 되찾고자 노력한 사례는 적습니다. 대다수 양반은 일본에 협력해 작위와 은사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당 이회영 선생(1867-1932)은 달랐습니다.

4 lines
16.

이회영은 더 이상 조국에 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제들을 불러 모으고 말했다. 더 이상 조국에 남을 수 없음과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여섯 형제는 그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4 lines
17.

추운 겨울 1910년 12월 30일, 이회영 일가는 일제의 눈을 피해 대동강과 압록강을 넘어 조국을 떠났다.

4 lines
18.

일제강점기 일본에 협조해 ‘호의호식(好衣好食)’한 양반들은 많았다.

4 lines
19.

망명 직전, 이회영 선생은 집안 노비를 모두 면천시켰는데, 노비 대부분이 함께 만주로 가 상당수는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해 독립군으로 ‘좌천(左遷)’되었다.

4 lines
20.

이회영 선생이 주도해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의열단 등 항일무장투쟁단체의 주역들, 1920년 봉오동·청산리 전투 등 기념비적 항일대첩을 치른 독립군,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등을 배출한 산실(産室)이었다.

4 lines
21.

OX 퀴즈를 마무리한 후, 지문2(승, 承)는 아래 기사로 결정했습니다. 기(起)에서 ‘이회영 선생 중심으로 일가가 만주로 올라가 독립운동하며 신흥무관학교 세웠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문2(승, 承)를 위해 3줄 내외의 중간글을 쓰세요.

4 lines
22.

OX 퀴즈를 마무리한 후, 지문2(승, 承)는 아래 기사로 결정했습니다. 기(起)에서 ‘이회영 선생 중심으로 일가가 만주로 올라가 독립운동하며 신흥무관학교 세웠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면, 지문2(승, 承)를 위해 3줄 내외의 중간글을 쓰세요.

4 lines
23.

독립운동에 조직과 자금은 필수다. 이회영 형제가 바로 그 일을 했다. 형제는 이듬해 4월 안동 선비 석주 이상룡과 함께 유하현 삼원보에 경학사를 설립했다. 밭을 갈아 생산을 하고(耕) 교육을 하며(學) 군사력을 키우는(武) 결사체였다. 사장은 이상룡, 내무부장은 이회영, 재무부장은 오랜 동지인 이동녕이 맡았다. 이상룡이 쓴 취지문은 이렇다. '한 삼태기 흙이 쌓여 태산을 이룬다. 힘을 축적해서 끝장에 대비할 것이다.'(우당 이회영 실기) 그리고 이듬해 여름, 이석영의 자금을 털어 구입한 인근 합니하 산속에 본격적인 독립운동 교육기관이 설립되니, 8년에 걸쳐 3,500명에 이르는 항일투쟁 지도자를 배출한 독립운동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다.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같은 만주 항일투쟁의 불꽃을 지핀 운동 기지였다. 교장은 셋째형 이철영이 맡았다. 3·1 운동 이후에는 해마다 입교를 원하 는 조선 청년이 600명에 이르렀다.

4 li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