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ksheets철벽성당 신앙 이벤트 1 - 김대건 신부님 퀴즈
Total questions: 20
Worksheet time: 3hrs 20mins
지구를 위한 희년
자비의 희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
생명의 희년
한국천주교회가 탄생된 지 얼마 안 되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집안의 최초 순교자인 증조 할아버지 김진후를
시작으로 모두 10명이 순교했다.
증조할아버지 김진후, 작은할아버지 김한현, 아버지 김제준, 김대건 신부까지 4대째 순교자 집안이다.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학자 정약종의 전도를 통해서였다.
김대건 신부의 저서
김해 김씨 족보
아버지 김제준의 비망록
신학교 스승 신부들에게 보낸 편지
방인 사제의 필요성을 절감한
모방 신부가 선발하였다.
최방제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최양업 토마스와
함께 모두 세 명이 선발되었다.
국경통과의 위험성 때문에
배를 타고 마카오까지 이동하였다.
중국 대륙을 남하하여 파리외방전교회 동양
대표부가 있는 마카오까지 걸어서 이동하였다.
1836년 12월 조선 출발, 1837년 6월 마카오에
도착 후 마카오에만 머물렀다.
함께 생활하던 최방제가 6개월도 되기 전에
위열병으로 사망하였다.
마카오의 소요사태로 필리핀 마닐라의 롤롬보이
수도원으로 옮겨 학업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자주 복통, 두통, 요통 등의 병을 앓아
교수 신부들의 걱정이 많았다.
세실제독의 신앙심이 깊어
한국 선교를 돕기 위하여
마카오의 민란으로 다른 곳으로 피신하기 위하여
조선정부의 초청으로
프랑스 외교사절의 통역을 돕기 위하여
조선 국왕과 통상조약을 맺기 위해
통역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기해박해(1839년)이후 살아남은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기해박해 이후 외국인 선교사에 대한 검문 강화로
조선 국경을 통한 잠입은 어려웠다.
기해박해 전후로 양성된 한국인 사제들도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위험을 무릅쓴 끝에 김대건 신학생와
매스트르 신부가 조선의 잠입에 성공하였다.
중국 상해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조선인으로서는 최초의 부제품이었다.
조선 3대 교구장인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의 법정연령이 24세였으므로
바로 사제품을 받을 수는 없었다.
페레올 주교가 머물 집을
서울 석정동(돌우물골)에 마련해 두었다.
바닷길을 통한 입국을 시도하기 위해
4월말 중국 상해로 배를 타고 출발하였다.
최방제의 친형인 최형 베드로와 현석문 가를로 등
11명의 신자 및 예비신자들이 함께 하였다.
육로를 통하여 맞이하기 위하여
조선 국경 근처인 의주로 향하였다.
바닷길은 파도도 잔잔하고 아무런 위험이 없었다.
풍랑과 폭풍 속에서 배가 많이 부서지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상해 도착 후 영국 군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외국어를 구사하는 김대건 부제의 모습을 보고
중국 관원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1845년 8월 17일 상해 푸동 지역의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의 서품식에
조선인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김대건 신부의 서품 일주일 후에는
최양업 부제가 사제 서품을 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서품 후 자신의 첫 미사를
조선에서 드리고자 차후로 미루었다.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
그리고 11명의 조선인 교우들이 함께 했다.
배의 이름은 라파엘호로 여행자의 주보인
라파엘 대천사의 이름을 붙였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 크고 성능 좋은 배를 새로 구입,
경험 많은 선원들과 출발했다.
천주교 신자인 중국인 선장을 만나
길 안내를 받으며 출발할 수 있었다.
부산
나바위
제물포
목포
용인
제주도
강경
제물포
서해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를 새로 개척하라는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백령도 근처로 오는 중국 어선을 이용하여
선교사들을 영접하고 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배를 징발하는 문제로 그곳 관장과 논쟁이 벌어져
당국에 체포되었고 순교에 이르게 되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로
선교사 입국로 개척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대건 신부의 학식과 능력을 높이 산 조정에서는
그를 회유하려고 하였다.
프랑스 군함이 정박하여
조선에 큰 환난을 내릴 듯이 위협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오히려 관리들을 교화시키려 하였다.
1846년 9월 16일 절두산에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김대건 신부가 처형되어 성지가 된 곳이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직후
바로 시신을 안장한 곳이다.
당시 17세의 이민식이 7일간 밤에만 이동하여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옮긴 곳이다.
김대건 신부 생애와 직접 연관이 있는 장소
(새남터, 솔뫼 등)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이나
김대건 신부 유해를 모신 성당
교구장 주교가 해당 교구에 희년 기념 성당으로
지정한 한 곳의 성당
해외의 경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름이 들어있는 성당
(a)
(a)
